독립군과 동포들의 후손들 현황 파악·교류하고 지원해야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다.

홍범도 장군은 1895년부터 의병활동과 독립군활동을 해왔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골짜기로 유인해 몰살시키며 첫 승리를 거뒀고, 같은 해 10월 여러 독립군 부대와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전해 4천명 이상의 일본군을 사살하며 승리했다. 러시아에 의해 무장 해제된 후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까지 이주하여 어렵게 살아갔다.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머나먼 타국에서 눈을 감았다.

평양 출신인 홍 장군의 유해는 78년 동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행적이 김일성의 항일 행적과 비교된다는 이유로 북측에서 소외당했고, 남측에서도 반공을 이유로 배척했기 때문이다.

홍 장군의 주요 활동지였던 연해주와 강제 이주 지역이었던 카자흐스탄에는 아직도 많은 동포와 독립군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4세대에 이르는 동포는 100여년이 흐르는 동안 국가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현재는 관련 정보가 제대로 집계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2018년 인추협은 대한항공과 한진의 협찬을 받아 당시 청와대 이용선 시민수석(현 양천을 국회의원)과 사랑의 일기에 동참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로프스크에 거주하는 독립군 4대 후손들도 초대됐다. 이들은 청와대를 방문해 영부인과 시간을 나누며 한민족과 동포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만 연해주에서 온 독립후손들이 한국말을 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불러왔다. 인추협은 그간 교류의 부족으로 언어와 문화적으로 서로 이방인처럼 되어 버렸다고 보았다. 정부가 홍 장군의 유해를 송환한 데 이어 역사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연해주에 살던 독립군과 동포들의 후손들 현황을 파악·교류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고진광 이사장                                                                                사진=고진광 이사장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고진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