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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바닥에 떨어진 국격을 바로잡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08-20 10:55
조회
196
[정운찬 칼럼] 바닥에 떨어진 국격을 바로잡자

입력2025.08.20. 오전 12:26 수정2025.08.20.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지난 8월 1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건희 특검팀은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을 시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수의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저항했다고 한다. 특검팀은 며칠 뒤에도 교도관 10여명을 동원하여 강제구인을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윤 대통령이 앉아 버티던 의자를 통째로 들어 올리려 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바닥에 넘어져 부상을 당한 후에야 특검 측이 물러났다고 한다.

부끄러운 전직 대통령 소환 소동

국가의 품격 결핍 전 세계에 노출

정쟁·분열이 공동체 자산 허물어

정치권의 자성이 회복의 첫 단추



지난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된 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 차량이 서울구치소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은 전직 검찰총장으로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겸손하게 그리고 성실히 조사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았나? 특검팀도 가관이었다. 국가수반으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갇혀 있지만, 불과 3년여 전 우리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인데 볼썽사납게 꼭 체포해서 조사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 조사를 받으라고 계속 설득해도 안 들으면 곧바로 기소하면 되지 않나? 법리를 떠나서 그 정도의 배려도, 관용도 없다면 이 사회는 너무 메마른 것 아닌가?

그게 다가 아니다. 특검팀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언론에 브리핑했다. 이것을 접한 외신은 조롱하듯 “전직 대통령, 속옷 차림으로 누워 심문 거부”를 헤드라인에 올렸고 한국은 경제와 문화의 급속한 성장에도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고 논평까지 실었다. 나는 이 일이 벌어진 2025년 8월 1일을 국치(國恥)의 날로 치부하고 싶다.

지금부터 115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국권침탈의 치욕이 국력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면, 오늘의 치욕은 국가의 품격이 너무 낮은 결과다. 우리 스스로 대내외적 망신을 초래한 것이어서 더욱 쓰라리다.

어쩌다 우리의 국격이 이토록 누추해졌을까?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공동체 정신이라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으로 버텨내며 지금의 커다란 경제를 이뤄냈다. 하지만 성장의 가속 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빈부, 지역, 기업 규모 간 등 각종 불균형과 불신이 누적되었고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며 소모적 대치를 반복했다. 일반 국민조차 좌우 이념싸움에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격의 회복은 요원하다. 상식과 품격의 회복은 정치권의 깊은 자성, 동반성장 철학의 보급 그리고 시민사회 전반의 자발적 실천이 병행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정부에서 일할 때 국내외적으로 ‘국격 제고를 위한 국민 실천 운동’을 추진했다. 한 예로, 마침 2010년은 해방 65주년이자 한국전쟁 60주년으로 각국 정상과 참전용사의 방한이 잦았다. 우리는 과거의 연대에 감사를 전하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예절을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공직을 떠난 뒤에도 나는 소박하게 그 뜻을 이어가고자 했다. 깔끔한 음식점에서 주인이 사인을 부탁하면 짧은 격려문을 남긴다. “맛있는 음식, 후한 인심, 그리고 마음으로부터의 친절이 국가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감사합니다.” 따뜻한 글귀 하나가 거창한 구호보다 더 오래 남고, 더 멀리 퍼져 나간다는 믿음에서다.

말과 태도가 문화를 바꾸는 현장을 직접 목격도 하였다. 서울신학대학교(당시 총장 유석성)에서 특강을 할 때, 학생과 교직원을 막론하고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고, 나에게 거리낌 없이 말도 건넸다. 이 대학은 “안감미 운동”을 활발히 실천 중이었다. 캠퍼스 구성원 누구나 마주치는 이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교환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야말로 국격을 높이는 데 강력한 출발점이라 생각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격은 결국 국민 개개인의 인격의 집적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품격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사장 고진광)가 주도해 온 ‘사랑의 일기 쓰기’ 운동에 주목해왔다. 40여년간 이어져 온 이 운동은 일기 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돈하고 인성을 함양하자는 제안이다. 사소한 습관처럼 보일지라도, 일기 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다듬어 가는 인성 교육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실천이 가정과 사회로 확산될 때, 대한민국은 건강한 정신과 따뜻한 인간성으로 충만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고 이어령 선생은 국격을 높이려면 “우선 우리 안의 천격(賤格)을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천격은 천박하고 저속한 말이다. 아름다운 말은 반드시 아름다운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2025년 8월의 혼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어떤 국가가 되고 싶은가?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희망을 보았다.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463025?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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