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 고사리 숨결 “숨이 막혀요…제발, 꺼내주세요”

6·25유공자회, LH에 공동발굴 촉구… 세계유일 ‘일기박물관’ 강제철거 3년
땅 속서 눈·비 맞으며 ‘신음’… ‘가슴 아픈 비명소리’ 곳곳 메아리 울려 퍼져

김동식 기자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19-09-03 12:57    

▲ 컨테이너 내부에 젖은 채 쌓아둔 일기장과 작품 등 주인 잃은 기록물이 가득한 가운데 파란 색으로 씌운 겉표지에 ‘김일성 발행’의 ‘조선지도첩’이 눈에 들어온다.ⓒ인추협

120만 고사리 숨결이 비참하게 땅속에 묻혀 눈비를 맞으며 서러운 눈물과 깊은 신음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귓가에 스쳐간다.

눈시울 적시는 아이들의 애절한 사연이 사랑의 일기 연수원의 ‘가슴 아픈 비명(悲鳴)’ 소리다.

지난달 28일 오후 세종시 금남면 남세종로 98번지 초등학교 부지에 세워졌던 옛 ‘사랑의 일기’ 연수원.

당시 4500평의 부지가 사라지고 웅덩이 같은 한 터에 을씨년스럽게 자리한 컨테이너, 그리고 무성한 잡초와 찢겨지고 물에 젖은 천막, 진흙탕에 나부끼는 기록물 매립흔적 등이 남아 있다.

이 현장에는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고진광 이사장이 3년째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철거과정에서 매몰된 유물, 기록물, 일기장을 발굴하면서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인추협에서 운영해 온 세종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3년 전인 2016년 9월 28일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의해 기습 철거된 뒤 이날까지 1066일째 철거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38도의 폭염에 정신을 잃고 혼절하기도 했다. 전기와 수돗물조차 단절된 컨테이너 생활은 그를 초주검으로 내몰았다.

▲ 지난달 29일 세종6.25참전유공자회 유공자 45명이 옛 연수원에서 LH에 ‘매몰유물 공동 발굴 촉구대회’를 가졌다.ⓒ인추협

하지만 그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매몰된 120만 점의 숨결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그의 딱한 사정에 많은 동지(同志)와 이웃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특히 이번에는 호국영웅들이 발 벗고 나서며 힘을 보탰다.

지난달 29일 세종6·25참전유공자회 유공자 45명이 이곳에 모여 폐허에 묻혀 있는 사랑의 일기장과 각종 자료들을 공동 발굴할 것을 LH공사에 강력히 촉구하는 ‘사랑의 일기 연수원 매몰 유물 공동 발굴 촉구대회’를 가졌다.

인추협 세종지부에서는 지난 3년 동안 이곳에서 발굴된 사랑의 일기장과 각종 자료들을 정리해 사진과 함께 전시한 ‘사랑의 일기 연수원 전시관’을 마련하고 일반 시민에게 오는 28일까지 한 달간 공개해 LH공사의 부당한 사랑의 일기 연수원 기습 철거 참상을 알리고 있다.

정세용 인추협 세종지부장은 “세종시내와 사랑의 일기 연수원 간에 셔틀버스를 운행해 많은 시민들이 사랑의 일기 연수원 전시관을 참관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 매몰지에서 발견된 김일성 마지막 유고. 분명 희귀자료다.ⓒ인추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