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고맙습니다" 8살 아이 서툰 손편지, 90대 참전용사 울렸다

  • 원우식 기자           입력  2020.06.25 10:01 | 수정 2020.06.25 10:27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시민단체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에서 전국 158개 초,중,고교를 섭외해 마련한 감사 편지 1만장. 24일부터 전국 생존 유공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원우식 기자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시민단체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에서 전국 158개 초,중,고교를 섭외해 마련한 감사 편지 1만장. 24일부터 전국 생존 유공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원우식 기자


“할아버지 우리나라를 지켜주셰서(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크 꼭 스세요(쓰세요) 꼭”

경기 용인시 둔전초등학교 1학년 이모(8) 학생은 23일 학교에서 제공한 편지지에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6·25전쟁 70주년을 기념해 이 학교에서 진행한 ‘참전 유공자에게 감사 편지쓰기’ 행사의 일환이다. 이 편지는 이틀 후 1951년 해병대 24기로 입대해 원산 전투에 참여한 참전유공자 이병용(90)씨가 받았다. 이씨는 “아직도 원산 여도섬의 벙커 안에서 밤새 포탄 터지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증손주뻘 되는 아이가 서툰 글씨로 ‘감사하다’고 말해주니 내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6.25 전쟁에서 엄청 힘써서 노력해주신 만큼, 공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한 참전유공자는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6·25 전쟁 중 육군 공병대로 참전한 최철환(90)씨다. 최씨는 “그간 국가유공자 복장을 입고 다니다면, 젊은이들은 우리를 ‘보수 할아버지’로만 보는 줄 알았다. 얼굴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오래 사세요’ ‘공부 열심히 할게요’라고 편지를 써주니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이 행사를 주선한 것은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다. 1990년대 북한에 혈액을 보내는 ‘혈액 교환 운동’을 벌여 유명세를 탔던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에서 추진했다. 이 단체는 전국 158개 초·중·고교를 섭외해 감사 편지 1만장을 모았고, 이를 24일부터 전국 생존 유공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단체의 회원은 100여명, 상근 직원은 대표 고진광씨를 포함해 3명 뿐이다. 고씨는 “넉넉치 않은 시민단체지만 ‘아이들에게 6·25 전쟁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게끔 하겠다’는 취지로 회비 3000만원을 모았고, 이 돈으로 편지 1만장과 택배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씨에 따르면, 아이들이 쓴 편지 1만장에는 ‘오류’도 많았다고 한다. 주로 초등학생들이 6·25 전쟁을 항일운동과 헷갈려하는 내용이다. “일본에서 벗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사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일본의 한 섬이 돼었을 거에요” “아픈 고문을 이겨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내용이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편지를 쓰면서 이 같은 오류를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고씨는 “6.25전쟁 유공자 어르신들은 이제 고령이기 때문에 숫자가 매년 급감한다”면서 “유공자가 살아계실 때, 아이들에게 6·25전쟁을 올바르게 교육하고 이 분들이 대우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5년 14만41 68명이던 생존 유공자는 2019년 8만7494명으로 5년만에 약 40% 감소했다.

6·25 전쟁에 육군 보병으로 참전했던 이순구(92)씨는 “유공자들은 명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현 정부는 제주 4.3사태, 5.18 민주화운동 등 특정 과거사만 지목해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국가에서 제대로 된 6·25전쟁 교육에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5/20200625013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