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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논평] 과거를 처벌한 사회가, 회복된 현재까지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컬럼 논평-
“과거를 처벌한 사회가, 회복된 현재까지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배우 조진웅 씨의 청소년기 범죄 이력이 다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사자가 결국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안은 이미 수십 년 전 발생한 일이며, 법적 처벌 역시 모두 이행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어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서사로 포장했고, 그 결과 한 개인은 현재의 삶 전체를 부정당한 채 사회적으로 퇴출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깊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 사회는 지금 ‘법적 처벌’ 위에 또 하나의 ‘사회적 처벌’을 덧씌우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잘못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 자체를 사회에서 지워버리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두 번째 처벌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의입니까?
청소년기의 일탈은 ‘개인의 악’이라기보다 ‘부정적 사회 환경의 신호’입니다.
저는 지난 수십 년간 어린이·청소년 인성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함께 무너지고, 함께 다시 일어서며 살아왔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제가 얻은 결론은 단순합니다. 어린 시절의 범죄는 거의 예외 없이,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정의 해체, 경제적 빈곤, 양육자의 부재와 방치, 폭력과 학대, 사회적 고립이라는 조건 속에서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의 절망을 먼저 배웁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소년법을 두고, 소년원을 ‘처벌의 공간’이 아닌 ‘회복과 교정의 공간’으로 규정해 온 것입니다. 이는 단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에게서 가능성을 완전히 거두지 않겠다.”는 사회의 마지막 양심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 마지막 양심마저도 외면한 채, 청소년기의 과거를 들어 성인이 된 이후의 삶 전체를 단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 그 사회가 스스로 ‘회복의 능력’을 포기했음을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대가를 치른 죄’는 다시 꺼내 처벌하지 않는 것이 문명의 원칙입니다.
법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을 마치면, 그 사람은 다시 사회로 복귀한 시민입니다. 그때부터 국가는 그를 보호할 책임을 갖고, 사회는 그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최소한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미 대가를 치른 과거를 다시 폭로하고, 그 사람이 그 과거를 “스스로 들고 다니며 고백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도덕적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법을 넘어선 도덕의 이름을 쓴 폭력이며, 공동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낙인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평생 들고 다니며 자백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다시는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갱생’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언론과 여론이 결합할 때, 한 사람의 인생은 하루 만에 무너집니다.
이번 사안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는 사실의 전달을 넘어선 ‘정서적 처형’이 반복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보다 분노를 키우는 제목, 맥락을 삭제한 단편적 서술, 댓글과 조회 수를 자극하는 감정의 과잉 유도와 같은 구조 안에서 당사자는 변론할 기회도, 숨 쉴 공간도 없이 단 하루 만에 사회적 유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형태의 ‘비공식 사법 시스템’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은 증거를 따지지만, 여론 재판은 감정을 따집니다. 법은 형량을 제한하지만, 여론은 인생 전체를 파괴합니다.
이 사회가 계속 이렇게 간다면, 다음 대상은 누구라도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특정 배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다음 대상은 언제든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한 번의 실수, 군 복무 중의 문제, 젊은 시절의 선택, 이 모든 과거가 언제든 다시 호출되어 현재를 파괴할 수 있다면, 이 사회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합니다. 사회는 그 변화를 전제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가장 비관적인 인간관을 전제로 사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병들고 있는 핵심 원인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범죄’가 아니라 ‘회복의 붕괴’입니다.
과거의 잘못은 반드시 책임져야 합니다. 그 원칙에 이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법적 책임을 다한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어 현재와 미래를 파괴하는 행위에는 분명히 반대합니다. 그것은 정의 구현이 아니라 사회를 더 잔인하게 만드는 집단적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마녀사냥 구조는 10대 청소년에게 “실수하면 끝장난다.”는 절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가장 위험한 신호입니다.
범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가 사람을 다시 살려낼 힘을 잃는 순간입니다. 회복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처벌은 끊임없이 강화되고, 용서는 조롱받으며, 반성은 무력해지고, 재도전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의 마지막 종착지는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자살률 세계 1위 국가, 대한민국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저는 그 동안 아이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반성하면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반성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처벌의 사회’에서 ‘회복의 사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의는 사람을 다시 살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과거를 반성한 사람이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이미 미래를 포기한 사회입니다.
회복이 가능한 사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기원하며.
2025년 12월 8일
(사)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고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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