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염천(炎天) 아래, 온 나라가 뜨거운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을 굳게 닫아건 채 에어컨이란 ‘인공의 바람’에 의지해 이 위태로운 여름을 견뎌내려 합니다. 도시의 건물마다 골목마다 늘어선 실외기는 우리에게 냉기를 주고, 대신 받은 거친 열기를 뿜으며 다시 거리를 달구고, 우리는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오직 전기의 힘만을 빌려 이 가혹한 계절에 맞서고 있습니다.

서울 독산동 골목길의 소박한 작은 집 하나. 필자의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작은 앞마당에는 잔디와 꽃밭을 일구는 대신,수십 년간 촘촘히 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은 크게 자란 감나무, 단풍나무들과 100여 그루가 넘는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만큼 뻗어 있습니다.


독산동 작은 집 대나무들@사진 필자 
독산동 작은 집 대나무들@사진 필자 


엊그제 또 하루의 지방출장을 마치고 집 대문을 들어서며 문득 다시 깨닫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 집에 들어서는 순간 느끼는 편암한은,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이외에,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이 나를 반겨주며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때문이란 것을…

나무와 더불어 담쟁이덩굴이 푸른 장막처럼 작은 이층집 벽을 감싸고 있는 집으로 들어오면, 느끼는 공기의 밀도와 온도가 확연히 달라졌던 것입니다. 달궈진 아스팔트가 토해내는 매운 열기 대신 서늘하고 짙은 녹음의 그늘이 발끝에 내려앉고, 대나무 잎새를 스치고 온 산들바람은 이마의 땀방울을 찬찬히 씻어줍니다. 기계가 힘겹게 뱉어주는 건조한 냉기가 아니라, 생명이 호흡하며 내어주는 친절한 위로입니다.

잠시 마당에 앉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한때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불렸던 이 작은 숲이 주고 있는 자연의 선물을 온 도시민들이 함께 누리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독산동 작은 집 울타리@사진 필자 
독산동 작은 집 울타리@사진 필자 


집 자랑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풍요를 좇아 도시를 팽창시키는 동안 너무도 많은 자연을 밀어냈습니다. 마을 입구를 든든히 지키던 늙은 느티나무와, 집집마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던 마당의 꽃나무들은 차가운 콘크리트와 번듯한 주차장으로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숲을 잃어버린 도시는 거대한 열기를 가두는 가마솥이 되었고, 밤이 깊어도 식지 않는 잿빛 도심은 이제 우리의 일상마저 옥죄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그 고통을 배가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베어낸 나무들의 빈자리가 아닐까요? 학계 다수의 연구결과도 도시에 숲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것이 폭염을 막아주는 물리적 그늘막이자 화학적 냉각수로서 작동하며, 현대 도시가 갖출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기후위기 대응 인프라임을 공통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택공급을 명분으로 도시 속 작은 자투리땅이라도 어떻게든 개발하여 밀집된 아파트를 짓고자 했던 역대 정부들의 부동산 정책에 기후위기 완화까지 폭넓게 고려하려는 의지는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 앞에서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다양한 조건들을 추가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수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도심의 녹지/공원 면적과 가로수를 비롯한 수목 식재 의무화 조건들을 대폭 강화하는 일입니다. 어떠한 형태의 개발이든, 어떠한 규모의 개발이든 그것에 맞춰 그에 상응하는 녹지와 숲의 조성이 함께 추진되어야만 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합니다.

나무 한 그루는 단순한 조경물이 아닙니다. 탄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그늘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주는 생명의 자산입니다. 이 폭염을 조금이라도 이겨나갈 수 있는 지혜는 에어컨과 전기가 아닌, 깊게 뿌리내려 기꺼이 자신의 그늘을 주고 맑은 공기를 내어주는 나무, 바로 ‘자연’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진광 인추협 이사장
         고진광 인추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