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한들초 교사 박민선

7여년의 장기 육아 휴직 후, 오랜만에 학교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현장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기였습니다.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졌던 일기 지도가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점차 사라져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는 일기쓰기는 두줄, 세줄 쓰기, 1~2주에 1회 정도의 주제일기 정도로 형태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휴직하기 전, 거의 10여년 동안 일기쓰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피드백과 함께 지속적인 지도를 해오면서, 일기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아왔던 저로서는 일기쓰기 지도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기에, 일기는 저의 학급경영에 있어서도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일기 피드백을 해주느라 바쁘고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면서, "차라리 잘됐다, 이 기회에 나도 좀 편해지자, 다른 쪽으로 아이들을 더 신경써주면 되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뭔가 '저의 합리화'같았고, 일기쓰기가 빠져있는 학급경영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휴직 전에도 일기가 사생활 침해라는 견해는 많이 언급되곤 했습니다. 12년 전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아이들과의 첫날, 우리 반은 일기를 매일 써야한다고 이야기하자, 한 여자 아이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일기는 사생활 침해잖아요”

그 아이를 향해 저는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하는 것을 알고 쓰는 일기이니, 침해당하기 싫은 사생활은 쓰지 말아라” 라고 이야기했습니다.일기 지도를 할 때, 잘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잘 써진 아이들의 일기를 모든 친구들 앞에서 정말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입니다.

그때 이후 그 여자 아이는 저한테 본인의 일기를 '읽힘 당하고 싶어'  일기를 정말 열심히 썼다면서, 본인은 스무살이 된 지금도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고, 일기는 정말 좋은 것 같다고, 고등학교 졸업 후 저를 찾아와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갔던 소중한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일기쓰기를 중단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외에도 일기쓰기 지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는 참 많았습니다. 전보다 더 가속화된 선행학습으로 학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습니다.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원 숙제 또한 너무 많다 보니 아이들의 하교 후 삶이 너무 바빴습니다. 부모님들의 우선 순위에서도 학원 숙제가 먼저 이지 일기가 먼저일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학교에서도 바쁜 아이들을 배려해서인지, 자연스레 학교 숙제도 다 사라져버려 학교 숙제조차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일기를 써오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올해 저는 5학년을 맡았습니다.그런데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고, 일기는 대체 어떻게 써야하냐고 묻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참지 못하기에 일기쓰기에 대한 반발과 거부감 또한 걱정되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런 여러가지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교사의 소신만으로 무엇인가를 끌고 나가기에는 학생 인권 조례, 학부모의 잦은 민원 등으로 교육 현장은 이미 힘을 잃었고, 교권이 상실돼 있었습니다. "요즘 일기 조심해야한다"는 걱정 가득한 주변 선생님들의 말씀도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큰 부담과 걱정을 떠안고 일기를 쓰게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3월 2일 개학 첫 날은 그냥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순간'인 5학년 첫날을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보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제 마음 한 가득 남아있는 일기에 대한 미련 때문에 개학 다음 날인 3월 3일, 결국 저는 일기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하루 전인 3월 2일로 돌아갔다고 생각해볼까? 첫 날 마음과 생각은 어땠는지,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 어떠한 다짐을 했는지, 생각느낌 가득한 글, 한 번 써볼까?"를 시작으로...

그렇게 일기쓰기의  첫 스타트를 학교에서 끊고! 지금까지 일기쓰기를 쭉 이어오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큰 불만이나 거부감 없이 열심히 따라줘 강제성을 주지 않아도 매일매일 빠짐없이 써오는 친구들이 점차 생겨났습니다.심지어 주말까지도 빠짐없이 써오는 아이들, 그 아이들 덕분에 일기쓰기를 지속적으로 해올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여름방학 일기까지도 거의 빠짐없이 일기를 써온 친구를 보며 너무 놀랐고,또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생각과 마음을 가볍게 여기고 표현할 줄도 몰라 하고 느낌, 생각이 아닌 사건 중심으로만 글을 쓰던 아이들이 일기를 통해 진지하게 글 속에서 생각을 녹여내고 이야기하는 건강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하루하루를 되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생겼으며, "일기쓰기가 참 좋은 것 같다"고, "오늘은 선생님이 뭐라고 써주셨을까 너무 궁금하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뿐입니다.

뭐, 이뿐이겠습니까. 일기쓰기에 대한 유익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참 할 말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일기라는 것이 너무 낯설어지고 있는 학교현장에서 일기쓰기를 지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전 학년, 다음 학년으로의 지속성과 연계성이 없기 때문에 제가 멈추면 아이들도 다 멈춰버릴 것 같습니다.일회성처럼 느껴지는 일기, 이 일기쓰기의 가치를 누가 얼마나 알까. 당장, 부모님들의 우선 순위에서도 학원 숙제에 밀려나고, 하든 말든 관심이 없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내가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나, 글쓰기를 위해서 국어학원은 다닐지언정, 학교 교육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부모님들, 일기는 이제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지,내가 일기를 위해 점심도 굶어가며 피드백을 주고 일기에 많은 시간 투자를 하며 이어나갈 필요가 있을까...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좋아서 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해도 좋지만, 저는 애매한 것이 매우 싫은 교사로서, 할 거면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게 된 지금의 이 학교현장이 너무 외롭고, 안타깝고 슬픕니다.

사진 인추협 제공사진 인추협 제공

이런 저에게 '사랑의 일기' 공모전은 정말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8월 여름방학 중, 이 '사랑의 일기' 공모전에 대한 안내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요즘같이 일기쓰기가 사라져버린 학교 현장에 이런 공모전이 있다니요! 혹시 수 년 전 안내문이 잘못 올라온 건 아닌지, 날짜를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이 공모전의 존재만으로도 일기가 아직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세상을 향해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고, 제 믿음을 입증시켜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하자고 하니 열심히 따라주었던 저희 반 아이들에게도 너무 좋은 보상과 격려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기쁨이 말 할 수 없이 컸습니다.

중요한 가치와 덕목이 가볍게 여겨지고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일기쓰기와 같은 활동에 대한 필요성과 소중함이 공론화 되어지고 사회 인식가운데, 부모님들의 의식 속에,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도 다시 예전처럼 당연스럽고 꼭 필요한 활동으로 다시 부활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